한국자본주의가 천하기 이를 데 없는 천박한 자본주의라는 사실은 이미 여러 학자들에 의해 갈파된 바 있다. 물론 천박하지 않은 자본주의가 지구 상에 존재하는 지는 의문이지만, 한국의 그것은 유별나게 천한 면모를 보여왔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이윤창출구조의 중심이 생산 부문에 있는 게 아니라 생산 외적인 부문에 있다는 것이 한국자본주의를 천민자본주의로 규정하
모든 게 진부하다. 시위 학생들에 좌경 용공이란 꼬리표를 다는 행태도, 시위 학생의 폭력성을 클로즈업한 영상도 익히 보고 들어온 것들이다. 임의적인 시민의 임의적인 평으로 학생들을 매도하는 여론 조작의 행태도 눈에 익은 것이다. 진부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하기에 한총련 시위에 관한 언론 보도에 별도의 논의를 덧붙이는 것마저도 식상하다. 시사만화 또한 마찬가지
바야흐로 개 풍년이다. 시사만화 지면마다 견공들의 초상화가 넘쳐난다. ‘변견’, 도사견, 불독 가릴 것 없이 초복을 전후한 시사만화의 주요 소재는 단연 견공들이다. 하지만 그 견공들의 모습이 색다르다. 복날마다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견공의 애처로운 모습이 아니다. 말 그대로 개 패듯 두들겨패도 시원치 않을 ‘견놈’의 모습이다. 그 ‘견
‘쌍둥이 만화’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지난 5월 12일자 세계와 조선의 만평은 다른 사람이 그렸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 발상법과 묘사법이 똑같다. 각각 자민련의 ‘제3후보 추대론’과 외교문서 변조사건으로 소재만 달리했을 뿐 이 두 만평은 상어라는 돌출변수의 출현에 놀라 허우적대는 등장인물의 표정까지 동일하게 처리하고 있다. 발행일이 같은 것으로 미루어
흑색선전은 4·11총선 관련 만화의 단골 주제였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는 각 당의 상호비방전을 시사만화는 공명선거를 해치는 저질 선거문화의 징표로 간주, 줄곧 호된 질책을 해댔다. 시사만화의 이런 입장은 장학로 수뢰사건을 계기로 가열되고 있는 폭로전에 대해서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중앙일보(4월 3, 5일 만평)를 비롯해 국민일보(3일
웃음에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 싸구려 코미디라면 모를까 굵직한 정?ㅋ英많?┯?다루는 시사만화라면 그것은 필수적이다. 웃음의 철학은 어디서 나오는가. 역사적 안목일 것이다. 현재 진행형의 사건을 역사의 부단한 몸짓으로 바라보는 시사만화라면 웃음 속에 역사적 혜안으로 갈고 닦은 촌철의 칼날이 숨겨져 있어야 할 것이다.역사 바로세우기의 진실성을 재는 바로미터가
“우습기만한 만평은 단 한 번의 효력을 가지는 진통제와 같지만, 역사적 안목과 통찰력을 가진 작가의 만평은 질병을 이기도록 해주는 치료제와 같다.” 저명한 만평가인 루리는 정치만평에서 ‘내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정치적 상황을 분석해 만화의 틀로 바꾸고 가능하다면 그 사건의 전말, 나아가 앞으로 전개될 추이까지도 예견할 수 있도록 암시
지난해 말, 전·노 특수(?)를 구가하던 시사만화는 새해 벽두가 되자마자 태도를 돌변, 4·11 총선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각 당이 ‘과거청산’에 돌려졌던 전열을 재정비, 4·11 고지를 향해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상황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소재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시사만화에서 신선한 맛은 느낄 수 없다. 각 당의 득표 전략, 상호 비방